간의대부란?
간의대부는 고려시대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이라는 기관에 속한 정4품 관직입니다. 중서문하성은 왕의 명령을 기록하고, 법령이나 정책을 검토하고, 왕에게 충고하고,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간의대부는 이 중서문하성의 낭사(郎舍)로서, 왕의 명령이나 법령에 대해 봉박(封駁)하거나 간쟁(諫爭)하는 직능을 담당했습니다. 즉, 왕의 잘못된 행위나 정책을 비판하고, 옳은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했습니다.
간의대부의 역사적 변화
간의대부는 원래 목종 때에 좌우간의대부(左右諫議大夫)라는 이름으로 있었습니다. 그때는 좌우 각각 1인씩을 두었고, 품계는 정3품(正三品)이었습니다. 문종 때에 관제가 정비되면서, 간의대부는 본품행두라는 행신으로 세워졌고, 좌우사의대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부터 간의대부는 중서문하성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충렬왕 때에는 간의대부의 명칭과 품계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먼저, 간의대부의 이름을 좌우간의대부로 바꾸고, 품계를 종4품(從四品)으로 낮췄습니다. 그런데 곧 다시 좌우사의대부로 고쳤습니다. 공민왕 때에는 다시 간의대부로 명칭을 바꾸고, 품계를 종3품으로 올렸습니다. 이때부터 간의대부는 중서문하성의 종3품 관직인 '직문하'보다도 위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간의대부의 이름은 좌우사의대부와 좌우간의대부로 번갈아 바뀌었으나, 결국 1372년에 다시 좌우사의대부로 고쳐졌습니다.
간의대부의 직능
간의대부는 중서문하성의 낭사로서, 왕의 명령이나 법령에 대해 봉박하거나 간쟁하는 직능을 담당했습니다. 봉박이란 왕의 명령이나 법령이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경우에, 그것을 반대하고, 그 이유를 밝히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간쟁이란 왕의 행위나 정책이 옳지 않거나 해로운 경우에, 그것을 비판하고, 옳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간의대부는 이러한 봉박과 간쟁을 통해 왕권을 견제하고, 정치를 바로잡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간의대부는 보궐 및 습유 등과 함께 중서문하성의 낭사로서 왕에게 충고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보궐이란 왕의 명령이나 법령에 빠진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을 보충하고, 수정하는 것입니다. 습유란 왕의 명령이나 법령에 남아있는 오류나 불합리한 부분을 찾아내고, 정정하는 것입니다. 간의대부는 이러한 보궐과 습유를 통해 왕의 명령이나 법령을 완성하고, 개선하고, 정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간의대부는 고려시대의 중서문하성에서 중요한 관직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이나 법령에 대해 봉박하고, 간쟁하고, 보궐하고, 습유하는 등의 직능을 수행했습니다. 왕권을 견제하고, 정치를 바로잡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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