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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증은 누구일까? 고려의 문신 강증의 생애 및 활동 사항 살펴보기

by 알아봐요 2024. 1. 23.

 

강증은 누구일까?

강증은 고려 전기에 활동한 문신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벼슬을 지냈고, 여진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시문에도 능했고, 유교 지식인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는 고려의 정치와 군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강증의 생애 및 활동사항

 

강증은 영강이라는 본관을 가졌습니다. 그는 음보로 양온사가 되어 10년 동안 아전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는 가문이 대대로 한미하고 별다른 재주도 없었지만, 평소 부지런하고 조심스럽게 일을 보았습니다.

 

강증은 군기주부동정에 올라서 동북면 진명도부서부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여진과 싸워 여러번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1097년에는 동여진의 적선을 노획하고 48인을 베었습니다. 이어 감찰어사가 되고, 1098년에는 중윤, 1101년에는 고공낭중 어사잡단으로 승진되었습니다.

 

강증은 동북면병마판관이 되어 능도에서 다시 여진과 싸워 이긴 공으로, 전중시어사에 올랐습니다. 1105년에는 지어사대사가 되었습니다. 1107년에는 윤관의 여진정벌 때 종군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좌산기상시에 올랐습니다. 1111년에는 서북면병마사, 1112년에는 어사대부, 1113년에는 형부상서가 되었습니다.

 

강증은 호부상서 삼사사를 거쳐 지추밀원사가 되었습니다. 1114년에는 상서좌복야 추밀원사 판삼사사를 역임한 뒤, 1116년에는 수사공 참지정사판상서형부사 겸 태자소부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라 사직했습니다. 시호는 경양이었습니다.

 

강증의 학문 및 저술 활동

강증은 시문에 능했습니다. 그는 천안부사로 재직할 때 그곳의 누정 기문인 대소원기와 영주남원루기를 지었습니다. 동문선에는 그의 시로 금주로 부임하는 김시승을 보내며, 제웅천강, 우제 등 3수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몽주의 포은집에는 강증의 포은 상국의 복직을 축하하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권근의 양촌집 남행록에서도 강증이 여러 편의 시를 지었음을 전합니다.

 

 

강증은 누구일까? 고려의 문신 강증의 생애 및 활동 사항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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