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많은 문신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문신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채모(蔡謨)였습니다. 채모는 고려 후기에 좌승지, 삼사사, 부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었는데, 그는 부당하게 재물을 모아 윗사람에게 아첨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고려사』 열전 폐행전에 수록되었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채모의 출신 가문
채모는 평강 채씨의 문신 가문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채화는 문하시랑평장사상장군판이부사를 역임했고, 어머니는 추밀원사호부상서상장군을 지낸 최연의 딸이었습니다. 채모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영향을 받아 문벌의 권력과 명예를 중시했고, 공부보다는 재물과 관직을 쫓았습니다.
채모의 부패한 행적
채모는 처음에는 왕지별감이라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왕지별감은 왕의 명령을 전달하고, 왕을 모시는 권력층의 일원이었습니다. 채모는 이 직책을 이용하여 백성들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세금과 공물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재물을 왕에게 바치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주머니에 넣거나 윗사람에게 뇌물로 주었습니다.
1281년에는 충렬왕이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합포에 행차하였습니다. 당시 경상도는 전쟁과 기근으로 어려웠는데, 채모는 왕지별감으로서 백성들에게 더욱 가혹한 조세를 부과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왕을 모시던 권력층에게 선물을 보내고, 유밀이라는 비싼 물건을 양선대라는 유명한 문신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채모는 이렇게 왕과 권력층의 호의를 사려고 했지만, 사실은 백성들의 적개심을 살 뿐이었습니다.
채모의 승진과 추락
채모는 이런 부패한 행위로 인해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1286년에는 지신사가 되었고, 8월에는 삼사사가 되었습니다. 삼사사는 고려시대의 최고 관직 중 하나로, 재정과 행정을 총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채모는 삼사사가 되면서 더욱 재물을 모으고, 뇌물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는 경상도권농사가 되었을 때는 세마포라는 고급 천을 많이 거두어들여 왕에게 바쳤고, 좌우의 권력층에게도 뇌물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채모의 부패한 행위는 결국 그의 추락을 가져왔습니다. 1287년에는 부지밀직사사가 되었는데, 이는 왕의 비밀을 책임지는 중요한 직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채모는 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왕의 불신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곧 전라도안무사로 좌천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첨의시랑 찬성사로 치사(관직을 그만둠)하였습니다. 채모는 이렇게 고려시대의 부패한 문신으로 남게 되었으며 고려사 열전 폐행전에 수록되었을 정도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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