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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왕녀의 칭호, 궁주에 대하여 (宮主)

by 알아봐요 2023. 12. 29.

고려 시대에는 왕녀들을 부르는 다양한 칭호가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바로 궁주라는 단어였어요. 궁주는 고려 시대에 왕비나 왕의 후궁, 공주 등에게 주던 별칭 중 하나로, 궁궐의 주인이라는 뜻이에요. 왕녀들을 부르는 다른 칭호로는 공주가 있었어요. 왕녀에게 궁주라고 부른 것은 태조 때 신명태후의 딸 왕녀를 흥방궁주라고 부른 것이 처음이었고, 고려 전기에 걸쳐 계속되었어요. 오늘은 궁주라는 칭호의 의미와 변화, 그리고 고려 왕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호로서의 의미와 평가에 대해 알아볼게요.

 

 

 

궁주의 의미와 책봉 대상

궁주는 왕족이 사는 '궁'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고려의 여성 작호 중 하나예요. 왕비나 왕의 후궁 같은 내명부뿐만 아니라 공주나 종실의 아내 같은 외명부에게도 주던 별칭이에요. 비슷한 작호로는 궁주 말고도 원주, 전주, 택주 등이 있어요. 이들은 모두 그들이 사는 공간의 주인이라는 뜻이에요.

 

처음에 후궁으로 들어가면 보통 궁인에서 시작해서 원주를 거쳐 궁주로 책봉되었고, 신료의 아내들에게는 주로 택호를 주었어요. 그래서 원주보다는 궁주가, 택주보다는 원주가 더 높은 작호라고 볼 수 있어요.

 

고려 시대에 내명부의 책봉명은 비와 주 계열로 나뉘는데, 궁주, 원주, 전주 등이 '주' 계열의 작호예요. '비' 계열로는 왕후, 왕비와 귀비, 숙비, 덕비, 현비 등의 제비가 있어요. 『고려사』에 따르면 전자는 정식 아내의 작호고, 후자는 첩의 작호라고 해요.

 

내명부만 책봉 대상으로 하는 '비'와는 달리 외명부까지 포함하는 작호인 궁주는 조금 다른 성격의 봉작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고려의 여성들 중에는 두 계열의 작호를 같이 가진 경우가 많았어요.

 

고려의 후비들 중에는 '경흥원주 귀비(현종 제8비)'나 '왕비 연덕궁주(예종 제2비)'처럼 두 계열의 작호를 같이 쓰는 경우가 있었고, 숙종의 큰딸처럼 대녕공주라고 불리면서도 대녕궁주라고도 불리는 경우도 많았어요.

 

궁주의 변천과 현황

궁, 원주는 고려 초에 궁, 원부인에서 비롯되었어요. 고려 초기에는 아직 체계화된 내명부가 없어서, 후비보다 낮은 여성들은 대부분 부인이라고 불렸어요. 대명궁부인, 대량원부인처럼 사는 공간의 이름에 부인을 붙인 형태였던 OO궁, 원부인이 궁, 원주의 주 계열 작호로 바뀐 시기에 대해서는 약간 의견이 다르지만, 『고려사』에 따르면 정종 때에 궁, 원부인이 궁, 원주로 바뀌었다고 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현종 때부터 나타나요. 이후에 궁주와 원주는 왕후, 왕비, 제비뿐만 아니라 공주나 종실의 아내에게도 주는 별칭으로 계속 쓰였어요.

 

이런 궁주 칭호에 변화가 생긴 것은 고려 후기에 원나라 공주가 고려에 왔을 때부터예요. 『고려사』는 당시의 변화를 충선왕 때부터 궁주를 바꿔 옹주로 삼았다고 써 있지만, 그건 정확한 설명이 아니에요.

 

원 공주가 온 이후에는 원 공주나 원 공주의 딸에게만 왕후나 궁주라는 작호를 주고, 고려 출신의 후비들은 제비와 함께 원주만 쓸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변화는 왕녀의 칭호에도 영향을 줬어요. 원 공주의 딸인 공주는 예전처럼 '공주’와 ‘궁주’ 작호를 같이 썼지만, 고려 후비의 딸인 왕녀들은 '옹주’와 '원주’로만 불렸어요.

 

간단히 말하면 고려 후기의 궁주는 원 공주나 원 공주의 딸에게만 주는 작호로 바뀌었던 거예요. 고려 출신의 후비나 왕녀가 다시 궁주로 봉작되었던 것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 때가 되어서야 가능했어요.

 

궁주의 의의와 평가

궁주는 고려 시대에 많이 쓰였던 여성 작호로서 고려 왕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예요. 사실 궁주는 그냥 작호일 뿐이었어요. 궁주나 원주가 사는 궁이나 원에는 궁원전이라는 이름으로 큰 토지가 있었어요.

 

후비나 공주가 특정 궁궐을 받아서 궁주가 되면, 그 궁궐에 있는 큰 궁원전의 수입을 받을 수 있었어요. 당시에 궁원전이 마을을 주는 단위로도 쓰일 정도로 크다는 점에서 궁주 칭호는 고려 왕실이 가진 경제적 풍요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어요. 또한 궁주는 고려 왕실의 여성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나타내는 작호이기도 해요. 고려 시대에는 왕실의 여성들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큰 역할을 했어요. 예를 들어, 고려의 세 여왕인 흥덕왕후, 정순왕후, 정선왕후는 모두 궁주로 책봉되었던 여성들이었어요. 그들은 왕후가 되기 전에도 궁주로서 왕실의 정치에 참여하거나 왕의 신뢰를 얻는 등의 활동을 했어요.

 

또한 궁주는 고려 왕실의 여성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나타내는 작호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의 여성들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예를 들어, 고려의 세 여왕인 흥덕왕후(興德王后) · 정순왕후(貞順王后) · 정선왕후(貞宣王后)는 모두 궁주로 책봉되었던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왕후가 되기 전에도 궁주로서 왕실의 정치에 개입하거나 왕의 신임을 얻어내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고려의 공주들도 궁주로서 다양한 역할을 했어요. 공주들은 왕실의 대외정책에 중요한 도구로 쓰였고, 시집간 곳에서도 왕실의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문화적 교류를 촉진했어요. 고려의 공주들은 자신의 궁주 작호를 통해 자신의 출신과 지위를 드러내고, 궁원전의 수입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독립성을 유지했어요.

 

이렇게 보면 궁주는 고려시대 왕실의 여성들이 가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능력을 잘 반영하는 작호라고 할 수 있어요. 궁주는 고려 왕실의 풍성함과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고려 왕실의 여성들의 자긍심과 존엄을 나타내는 작호였어요. 궁주는 고려시대의 여성들이 살아가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어요.

 

고려시대 왕녀의 칭호, 궁주에 대하여 (宮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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