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부교사건이란 고려 태조 때, 거란이 보내온 낙타 50필을 만부교 아래에 매어놓아 굶어 죽게 한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 사건은 고려와 거란의 외교관계를 단절시키고, 양국간의 적대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만부교사건의 배경, 내용, 결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만부교사건의 배경
만부교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고려 태조 25년(942년)입니다. 이 전해에 거란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고, 낙타 50필을 바치는 등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거란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거란은 고려의 이웃나라였던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란은 고려의 영토를 침략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고려는 거란의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이는 처사를 내렸습니다.
만부교사건의 내용
만부교는 개경의 보정문 안에 있는 다리로, 이 일이 있은 뒤로는 탁타교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낙타는 거란의 상징적인 동물로, 거란의 문화와 생활에 깊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거란은 낙타를 바치는 것으로 고려에게 우정과 존경을 표현했으나, 고려는 낙타를 죽이는 것으로 거란에게 경멸과 적대를 표현했습니다. 이는 양국간의 가치관과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사례입니다. 고려는 낙타를 죽이는 것으로 거란의 침략을 막고, 고려의 자주성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란은 낙타를 죽이는 것을 크게 불쾌하고 분개하였으며, 고려에게 복수하려고 했습니다.
만부교사건의 결과
만부교사건은 고려와 거란의 외교관계를 단절시켰습니다. 이듬해에 지어진 「훈요십조」 가운데서도 거란을 ‘금수의 나라’로 지목하여 그 언어와 제도를 본받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뒤 양국간의 관계는 991년부터 1018년에 이르는 동안 세 차례의 전쟁을 거친 뒤 1019년에 화의가 맺어짐으로써 화평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만부교사건은 고려와 거란의 역사적인 갈등의 원인이 되었으며, 양국의 문화와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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