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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성전투, 고려와 몽골의 협력, 하지만 이후의 굴욕

by 알아봐요 2023. 12. 30.

오늘은 고려시대에 일어난 강동성전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강동성전투는 1218년부터 1219년까지 강동성이라는 곳에서 고려와 몽골이 함께 거란이라는 나라를 쳐서 없앤 전투입니다. 거란은 금나라의 지배를 받던 사람들이었는데, 몽골이 강해지면서 금나라가 약해지자 난을 일으키고 고려에 침입했습니다. 그래서 고려는 거란을 쫓아내기 위해 몽골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전쟁을 했답니다. 이 전투는 고려와 몽골의 첫 만남이었고, 그 후에 고려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떤 영향이었는지, 그리고 전투의 경과와 결과는 어땠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거란의 난과 침입

강동성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거란은 몽골과 금나라 사이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거란은 원래 금나라의 지배를 받았는데, 13세기 초에 몽골이 강해져서 금나라를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금나라는 약해지고, 거란은 금나라의 지배를 받는 것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거란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서 난을 일으켰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대요수국이라는 부족이었습니다. 대요수국은 몽골과 싸우다가 패해서 새로운 땅을 찾아 고려에 침입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여러 도시를 휩쓸고 다녔습니다. 고려는 군사를 보내서 거란을 쫓아내려고 했는데, 거란은 계속해서 남하하다가 개성 근처까지 왔다가 동쪽으로 돌아가서 여진 땅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여진과 합쳐서 다시 고려에 침입했습니다. 이렇게 거란은 3년 동안 고려에 소란을 피웠습니다.

 

고려와 몽골의 협력

고려는 거란을 쫓아내기 위해 몽골과 형제의 맹약을 맺었습니다. 몽골은 이미 거란을 적으로 봤기 때문에 고려와 협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몽골은 합진이라는 원수를 보내서 동진이라는 나라와 함께 거란을 공격했습니다. 동진은 몽골의 종속국이었습니다. 고려는 조충과 김취려라는 장군을 보내서 몽골과 동진과 함께 거란을 쳤습니다. 거란은 강동성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저항했습니다. 참고로 강동성은 지금의 평안남도 강동에 있었습니다. 강동성은 성벽이 높고 강한 성이었기에 연합군은 성을 공격하기 전에 성 아래에 못을 팠습니다. 그리고 성의 남문에서 동남문까지는 동진이 맡고, 동문 이북은 김취려가 맡았습니다. 조충은 전체를 지휘했고 연합군은 성을 총공격했습니다.

 

전투의 결과 - 거란 소탕, 하지만...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거란은 궁지에 몰려서 항복했고 일부는 자살하기도 했습니다. 거란의 왕자도 목을 매서 죽었습니다. 거란의 관인과 군졸과 부녀자들은 5만 명이나 되었고 이들은 연합군에게 포로가 되었습니다. 몽골의 합진은 거란의 부녀와 동남 7백 명만을 고려에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몽골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공을 세운 조충과 김취려에게도 몇 명을 주었습니다. 고려는 거란의 포로를 백성으로 삼아서 각 도에 토지를 주고 살게 했습니다. 이를 거란장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강동성전투는 거란의 난을 끝냈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는 고려에게 좋은 결과만 가져다주지는 않았습니다. 고려는 몽골과 형제의 맹약을 맺었기 때문에, 몽골의 정치적 및 경제적인 간섭을 받게 되었습니다. 몽골은 고려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고, 군대를 보내라고 했으며 고려의 왕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강동성전투는 고려와 몽골이 처음 협력하여 거란을 물리치는 좋은 결과를 얻어내긴 했지만 몽골의 큰 간섭을 받는 굴욕적인 외교관계를 만들게 되어 결국 고려에게는 큰 비극이 되었습니다.

 

강동성전투, 고려와 몽골의 협력, 하지만 이후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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