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연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영락'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영락이라는 연호는 광개토대왕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고구려의 세력과 문화가 크게 발전했던 시기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영락이라는 연호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잘 알고 계신가요? 이번 글에서는 영락 연호의 뜻과 내용, 그리고 역사적 의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고구려 영락이란?
영락이란 삼국시대 고구려의 연호로, 지금까지 확인된 고구려 연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연호란 왕이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정하는 연도의 이름으로, 당시의 정치적이나 사회적인 상황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에는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었을 때 '건원’이라는 연호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건국의 원년’이라는 뜻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락이라는 연호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영락의 뜻은 '영원히 낙하(樂下)하라'라는 뜻으로, 고구려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한 것입니다. 영락 연호는 광개토대왕 시대의 중국과 대등한 입장을 과시한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天下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천하관이란 천하(天下)라는 말로 세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고구려가 자신들의 영토와 문화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영락 연호는 고구려 왕권의 강화를 뜻하기도 합니다. 왕권이란 왕이 가진 권력으로, 왕이 국가의 정치와 사회를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영락 연호를 쓰기 시작한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로,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중국의 여러 나라와 교류하며, 고구려의 문화와 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러한 광개토대왕의 업적과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영락 연호였습니다.
영락을 확인할 수 있는 곳
영락 연호는 다른 고구려 연호와 마찬가지로 사서에는 보이지 않고 금석문에서만 확인됩니다. 금석문이란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글로,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의 업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영락 연호가 적힌 금석문은 두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는 만주 집안현(輯安縣)에 있는 광개토왕릉비문이고, 다른 하나는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서 발굴된 고분 벽면에 남아 있는 유주자사(幽州刺史) 진(鎭)의 묵서명(墨書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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