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는 고려전기에 살았던 유명한 문신이다. 문신이란 문화와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서희는 고려의 국내 정치와 외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고려의 옛 땅을 되찾고, 거란과 송나라와의 관계를 잘 다루었다. 서희는 성종이라는 임금의 신임을 받았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서희의 생애
서희는 이천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재상이었다. 재상이란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서희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재상이 되었다. 그의 아들들도 재상이 되었고, 그의 딸은 현종이라는 임금의 비가 되었다. 서희는 가문의 명예를 높였다.
서희는 960년에 과거라는 시험에 합격했다. 과거란 재상이 되기 위해 치는 시험이다. 그는 과거에 합격한 후에 여러 직책을 맡았다. 그는 군사와 정치를 잘 알았고, 임금의 곁에서 충성스럽게 일했다. 그는 태보와 내사령이라는 최고의 직책에까지 올랐다.
서희의 업적 및 활동사항
서희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을 많이 했다. 그는 송나라와의 외교를 잘 이끌었다. 송나라는 고려의 이웃나라이다. 서희는 972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사신이란 다른 나라에 가서 우리 나라의 의사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서희는 송나라에 가서 고려와 송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서희가 가장 유명한 일은 거란과의 담판이다. 거란은 고려의 북쪽에 살던 민족이다. 거란은 고려의 북진정책과 친송외교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북진정책이란 고려가 옛 고구려의 땅을 되찾으려고 하는 정책이다. 친송외교란 고려가 송나라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정책이다. 거란은 이런 정책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993년에 거란은 고려를 공격했다.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이끄는 군대가 고려의 땅을 침범했다. 그는 고려에게 항복하거나 땅을 빼앗기라고 위협했다. 고려에서는 항복하거나 땅을 내주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서희는 그런 의견을 반대했다. 그는 거란의 군대가 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고려가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희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고려의 군대가 거란의 군대를 물리쳤다. 소손녕은 고려의 대신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대신이란 임금의 아래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서희는 고려의 대신으로 거란의 군영에 갔다. 거기서 그는 소손녕과 담판을 했다.
서희는 담판에서 고려의 입장을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라고 하고, 거란이 침입한 땅은 고려의 땅이라고 했다. 그는 고려가 송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여진 때문이라고 했다. 여진이란 압록강 동쪽에 살던 민족이다. 그들은 고려와 송나라의 외교를 방해했다. 서희는 거란이 여진을 쫓아내고 고려의 옛 땅을 되돌려주면 고려가 거란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
서희의 말에 소손녕은 납득했다. 거란은 고려에게 사과하고 철병했다. 철병이란 군대를 끌고 돌아가는 것이다. 서희는 고려의 위기를 막고, 거란과의 평화를 이루었다. 그는 고려의 영토를 확장하고, 강동6주라는 성을 쌓았다. 강동6주란 압록강 동쪽에 있는 6개의 성을 말한다. 이 성들은 고려의 안전을 지켜주었다.
서희는 정치와 외교뿐만 아니라 문화와 도덕에도 탁월했다. 그는 임금이 놀이를 하려고 할 때, 그것이 나라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려고 할 때, 그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이 술을 마시려고 할 때, 그것이 건강에 해롭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의 실수를 바로잡고, 나라의 이익을 위해 일했다. 그는 정우현이라는 사람이 임금에게 비판적인 말을 했을 때, 그 말이 옳다고 변호했다. 그는 정우현의 죄를 자신이 짊어졌다. 그는 정의와 도리를 중시했던 사람이었다.
서희의 상훈과 추모
서희는 성종이라는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성종은 서희가 병이 들었을 때 직접 방문해서 위로했다. 성종은 서희에게 말과 과일을 선물했다. 성종은 서희가 살고 있는 개국사라는 절에 곡식을 주었다. 성종은 서희가 빨리 낫기를 바랐다.
그러나 서희는 99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37살이었다. 그는 짧은 삶을 살았지만, 많은 일을 했다. 그는 고려의 위대한 문신이었다. 그의 시호는 장위라고 했다. 시호란 죽은 사람에게 주는 이름이다. 장위란 장하고 위엄있는 뜻이다. 1027년에 성종의 묘에 서희의 이름이 새겨졌다. 이것은 성종이 서희를 추모하는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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