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天開)는 고려 전기에 일어난 묘청의 반란 때 사용한 연호(年號)입니다. 연호란 국가나 왕이 정하는 통치 기간의 명칭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헌법 제10조에 따라 대통령 임기마다 공식적인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고려나 조선 같은 국호와 함께 연호를 바꿔가며 사용하였습니다.
천개의 역사적 배경
천개(天開)의 창시자는 묘청이라는 사람입니다. 묘청은 고려 제17대 인종의 왕자로,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왕위 계승권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삼촌인 인종의 증손인 명종을 왕으로 삼고, 자신은 왕의 세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명종이 갑자기 죽고, 그의 아들인 인조가 왕이 되었습니다. 인조는 묘청을 두려워하고, 그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묘청은 이에 분개하고, 국왕에게 서경(西京)으로 수도를 옮겨, 칭제건원(稱帝建元)하여 정치적 혁신을 꾀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칭제건원이란,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고, 새로운 연호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묘청은 이렇게 하면 고려가 강해지고, 외세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개의 수립과 몰락
그러나 묘청의 주장은 인조와 다른 신하들에게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묘청이 왕권을 빼앗으려는 음모라고 생각했습니다. 묘청은 이에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국호를 대위(大爲)라 하고, 연호를 천개(天開)라 하였습니다. 천개(天開)란, 하늘이 열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묘청은 이렇게 하면 하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묘청의 반란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인조는 김부식(金富軾) 등의 장수들을 보내어 묘청을 토벌하였습니다. 1135년(인조 13)에 묘청은 전투에서 패하고, 자살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대위국과 천개(天開)의 연호도 사라졌습니다. 천개(天開)는 역사상 가장 짧은 연호로, 단 3개월만에 끝났습니다.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희, 고려전기의 문신이자 정치인, 외교가 (1) | 2023.12.30 |
---|---|
고려시대 왕녀의 칭호, 궁주에 대하여 (宮主) (1) | 2023.12.29 |
감작이란? 고려시대 서리직 감작 알아보기 (0) | 2023.12.29 |
만종(萬宗) - 고려시대의 무뢰승 (1) | 2023.12.28 |
경의(慶儀) - 고려 후기의 문신 (1) | 2023.12.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