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려시대에 있었던 중요한 부서 중 하나인 중서문하성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특히 이 부서에 속한 낭사라는 관원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것입니다. 낭사는 왕의 귀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과 가까이 있어서 왕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간언하는 등의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매우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직책이었죠. 하지만 그들은 왕권을 약화시키고 귀족의 지위를 강화시키는 역할도 했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중서문하성이란?
중서문하성은 고려시대에 있었던 부서입니다. 이 부서는 왕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왕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간언하는 등의 일을 했습니다. 이 부서에 속한 정3품 이하의 관원들을 낭사라고 부르는데요, 낭사는 왕의 귀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서문하성은 시대에 따라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성종 때에는 내사문하성낭사라고 하였고, 문종 때에는 중서문하성낭사라고 하였습니다. 1369년에는 문하부낭사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낭사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성랑이나 간관이라고도 하였고, 어사대라는 부서의 관원과 함께 대간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중서문하성의 2품 이상 관원들은 성재나 재신, 재상 등으로 불렀습니다.
낭사의 직위와 직무
낭사는 처음으로 982년에 내사문하성이 생겼을 때 설치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고려시대 내내 계속 존재하였습니다. 1401년에 문하부가 없어지고 의정부로 바뀌면서 낭사는 사간원이라는 독립된 부서가 되었습니다.
낭사에 속한 관원은 문종 때를 기준으로 보면 총 14명이었습니다. 정3품에는 좌우산기상시라는 직위가 각각 1명씩 있었고, 종3품에는 직문하라는 직위가 1명 있었습니다. 정4품에는 좌우간의대부라는 직위가 각각 1명씩 있었고, 종4품에는 급사중과 중서사인이라는 직위가 각각 1명씩 있었습니다. 종5품에는 기거주, 기거랑, 기거사인이라는 직위가 각각 1명씩 있었고, 정6품에는 좌우보궐이라는 직위가 각각 1명씩 있었습니다. 종6품에는 좌우습유라는 직위가 각각 1명씩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중서사인은 태조 때에 있었던 내의사인이라는 직위의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낭사는 매우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직책이었습니다. 한림원이나 이부, 병부와 같은 부서를 정조라고 부르는데요, 낭사는 이 정조와 어사대의 관원과 함께 청요직이라고 불렸습니다. 청요직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직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낭사가 되려면 엄격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청렴하고 덕망이 있으며 강직한 사람이어야 했고, 대부분 문벌귀족 출신이어야 했습니다.
낭사와 어사대 대관의 직무는 법으로는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낭사는 왕의 잘못된 행동이나 실수에 대해 간언하는 것이나, 왕의 부당한 명령이나 법령을 되돌리고 바로잡는 것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간쟁이나 봉박이라고 부르는데요, 주로 왕을 상대로 했습니다. 반면에 대관은 정치의 문제점을 제기하거나 풍속을 바로잡거나 관원을 감찰하거나 탄핵하는 것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주로 관인을 상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은 서로의 직무에 참여하였습니다. 즉, 대관도 간쟁이나 봉박을 하였고, 낭사도 정치의 문제점을 제기하거나 풍속을 바로잡거나 관원을 감찰하거나 탄핵하였습니다. 또한 대관과 함께 관원을 임명할 때 적격여부를 확인하는 고신서경이라는 일과 법규를 새로 만들거나 바꾸는 일을 하는 의첩서경이라는 일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의 근처에 있어서 왕을 섬기고 도와주는 일도 하였습니다.
낭사의 특권과 역할
한편 청요직이었으므로 특권도 있었습니다. 낭사직을 하고 있는 동안은 체포할 수 없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또한 수령이나 하급관원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사신이나 지공거라는 직위에 임명될 수 있는 권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승지방을 거치지 않고 왕에게 직접 말하거나 왕을 만나서 글을 올릴 수 있는 권한도 있었습니다. 또한 외직으로 전보되지 않을 권한도 있었습니다.
낭사의 특권은 그들의 역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낭사는 왕의 잘못을 바로잡고 정치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국가와 왕실의 안정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왕권을 약화시키고 귀족의 지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거부하거나 바꾸기도 했고, 왕을 비판하거나 반대하거나 탄핵하기도 했고, 왕의 세습을 방해하거나 왕위를 빼앗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다투거나 결탁하거나 배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과의 갈등이나 정치적 혼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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