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거란은 한반도와 중국 북부를 둘러싼 두 강한 나라였습니다. 고려는 고구려의 후손이고, 거란은 흑룡강 유역의 유목민족이었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처음에는 친하게 교류했지만, 나중에는 서로 적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과 교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려와 거란의 시작
고려와 거란은 고려의 태조 왕건 때부터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922년에 거란이 고려에 낙타와 말 등을 선물로 보냈습니다. 이는 거란이 고려를 친구로 생각했다는 뜻이었습니다. 고려도 거란에게 사신을 보내고, 선물을 주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926년에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고, 발해의 땅을 차지하자 고려와 거란의 관계는 나빠졌습니다. 발해는 고려의 이웃이자 형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려의 태조는 거란을 잔인하고 비열한 나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거란의 사신을 죽이고, 선물로 받은 낙타도 굶어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에게 거란을 조심하라고 훈계했습니다.
고려와 거란의 대립
고려와 거란의 대립은 송나라가 중국에 건국된 후에 더 심해졌습니다. 거란은 중국을 정복하려고 했는데, 고려가 거란의 뒤에 있어서 방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란은 고려의 영토를 침범하고, 고려가 송나라와 교류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993년에 거란은 고려를 공격했습니다. 거란은 고려가 신라의 땅을 차지하고, 송나라와 교류하는 것을 이유로 삼았습니다. 고려는 거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을 쌓고, 군대를 키웠습니다. 고려의 성종은 거란의 명분이 틀렸다고 반박했습니다. 고려가 신라의 땅을 차지한 것은 고구려의 땅을 되찾은 것이고, 거란의 수도 동경도 고구려의 땅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송나라와 교류하는 것은 거란이 압록강 주변의 여진을 괴롭혀서 거란과 교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려는 거란과 우호 관계를 맺겠다고 약속하고, 거란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고려는 이 전쟁에서 거란에게 사대의 예를 보였지만, 압록강 동쪽의 땅을 얻었습니다. 이후 고려는 거란에게 사대의 예를 보였지만, 송나라와의 교류를 끊지 않았습니다. 거란은 이에 불만을 가지고, 다시 고려를 공격했습니다.
고려와 거란의 전쟁
1010년에 거란의 성종은 고려의 목종을 죽인 일을 이유로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거란의 성종은 어머니가 죽은 후에 고려를 굴복시켜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습니다. 거란은 황제가 직접 나서는 친정을 했습니다. 친정은 거란이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속국으로 만들려고 할 때 하는 전술이었습니다.
거란은 고려에 침입하여 고려의 수도 개경까지 다가갔습니다. 고려의 현종은 나주까지 도망갔습니다. 고려는 거란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거란은 겨울이 되어 전쟁을 계속하기 힘들었고, 고려군의 반격에도 당했습니다. 그래서 거란은 퇴각했습니다. 퇴각하는 도중에 고려의 강감찬이 거란군을 공격하여 크게 쳐부쉈습니다. 거란은 이 전쟁에서 큰 패배를 입었습니다.
거란의 성종은 패배에 분노하고, 고려의 현종에게 친조를 요구했습니다. 친조는 거란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것을 뜻했습니다. 고려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거란은 고려에게 흥화와 통주 등의 6성을 돌려주라고 요구했습니다. 고려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거란은 1015년에 압록강 동쪽의 고려 영토를 점령하고, 고려를 압박했습니다. 고려는 거란의 사신을 억류하고,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양측의 강경 대응은 1019년에 거란의 소배압이 귀주에서 참패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018년 12월 거란의 소배압은 1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고려에 들어왔습니다. 1019년 1월에는 개경에서 100리 떨어진 신은현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고려의 방어에 막혀 돌아가야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귀주에서 고려의 강감찬이 거란군을 공격했습니다. 거란군 쪽에서는 꽤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고려와 거란의 화해
고려와 거란의 전쟁은 고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고려는 거란의 공격을 잘 막았습니다. 고려는 성을 쌓아 거란의 기마병을 막았습니다. 고려는 들판을 비워 거란의 식량과 마초를 빼앗았습니다. 고려는 강감찬이 이끄는 군대가 거란군을 크게 쳐부셨습니다.
거란은 고려와의 전쟁을 포기하고 화해를 요청했습니다. 고려도 거란의 사신을 돌려주고, 거란의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이로써 고려와 거란의 관계는 정상화되었습니다. 고려는 거란에게 칭번납공이라는 형식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고려가 거란을 친구로 인정하고, 선물을 주고 받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란은 고려가 완전히 복종하지 않았다는 점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거란은 고려의 군주가 친조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분개했습니다. 그래서 거란은 더 이상의 대규모 전쟁을 하지는 못했지만, 고려를 괴롭히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고려도 여러 번의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려와 거란은 서로 무력 충돌을 멈추고,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고려와 거란의 교류
고려와 거란은 전쟁을 하면서도 교류를 계속했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문화와 종교, 무역과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했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문화 교류를 했습니다. 고려는 거란의 문화를 배우고, 거란은 고려의 문화를 배웠습니다. 고려는 거란의 의복과 음식, 음악과 춤, 미술과 공예 등을 받아들였습니다. 거란은 고려의 글과 책, 시와 노래, 그림과 도자기 등을 존중했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문화적으로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고 받았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종교 교류를 했습니다. 고려는 불교와 유교, 도교와 천도교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란은 불교와 천도교, 무속과 샤머니즘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서로의 종교를 배우고, 존중하고, 혼합하기도 했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종교적으로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고 받았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무역과 외교 교류를 했습니다. 고려는 거란에게 비단과 금, 도자기와 책 등을 팔았습니다. 거란은 고려에게 말과 낙타, 모피와 보석 등을 팔았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주고 받았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서로의 사신을 보내고, 선물을 주고 받았습니다. 고려와 거란은 무역과 외교적으로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고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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