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대승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정중부 일파를 제거하고 집권한 인물입니다. 그는 교위, 사심관, 장군 등을 역임하면서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지만, 동시에 많은 반감과 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의 생애와 활동사항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경대승의 출생과 성장
경대승은 청주(淸州) 본관으로,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경진(慶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가산을 돌보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불법으로 탈취한 토지를 선군(選軍)에 바치고 하나도 취하지 않아 청백하다는 평판을 받았습니다. 15세에 음서(蔭敍)로 교위(校尉)에 임명되었고, 그 후 차차 벼슬이 올라 장군이 되었습니다.
경대승의 정권 탈취와 도방의 설립
경대승은 1179년에 정중부 일파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정중부는 무신으로서 종전의 최고권력기구였던 중방(重房)을 주도하고 있었으나, 경대승은 그를 죽이고 중방의 존재를 무력화시켰습니다. 대신에 자신의 사적 집단인 도방(都房)을 두어 정권유지의 바탕을 마련했습니다. 도방은 경대승의 친족과 부하들로 구성되었으며, 군사적·행정적·재정적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경대승의 정치적 성과와 실패
경대승은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했으나, 관리등용에는 문무신을 고루 기용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국내의 안정과 국방을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했으며, 특히 1182년에는 몽골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는 여러 무신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하였으며, 잦은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자신을 도와준 허승과 김광립을 제거하였으며, 한신충, 채인정, 박돈순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섬으로 귀양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집권 동안 도방의 무리라 일컫는 도둑이 횡행하고, 잦은 민란이 발생하는 등 사회가 어지러웠습니다. 1183년 30세로 사망했습니다.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영창, 발해 유민으로 발해광복운동을 벌인 인물 (0) | 2024.02.04 |
---|---|
대집성, 발해 왕족의 후예이자 고려의 무신 (0) | 2024.02.03 |
각장 뜻, 고려시대 각장의 기원과 종류, 역할과 소멸 간단히 보기 (1) | 2024.02.03 |
고려의 마지막 왕 고종, 그리고 몽고의 속국이 된 고려 (0) | 2024.02.02 |
고려의 여왕 덕녕공주에 대하여 (1) | 2024.02.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