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왕족의 후예, 고려의 대장군
대집성은 고려 후기에 활약한 무신이자 관리였다. 태집성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발해 왕족의 피를 이어받은 고려의 귀족이었다. 그의 사위는 무신집권의 주역인 최우와 고종의 신뢰를 받은 주숙이었다. 고종의 시대에는 낭장으로서 군사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1218년, 거란유종의 침입에 맞서 싸우던 무신집권자 최충헌은 대집성을 차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대집성은 승려와 노예를 병력으로 삼아 큰 혼란을 야기하였다. 이로 인해 차장군의 자리를 잃었지만, 거란유종과의 전쟁에서는 용맹하게 싸웠다. 최우가 집권하자 대장군으로 승진하였다.
몽골의 침략과 강화천도에 반대한 대집성
1228년, 대집성은 대장군으로서 서북면병마사가 되었다. 그는 금과 은, 비단으로 장식한 어련을 만들어 고종에게 바치고, 최우의 친절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1231년, 몽골이 고려에 침략하였다. 대집성은 고려 3군의 후군진주로서 전장에 나섰다. 그는 안북부성 안에서 수비하는 것보다 성 밖에서 몽골군과 맞서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의 결단은 큰 참사를 불러왔다. 안북부전투에서 대패한 대집성은 몽골군의 포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최우는 몽골군 대장 사르타이와 강화를 맺어야 했다. 대집성은 몽골의 요구에 따라 자주성을 항복시켰다. 자주부사 최춘명을 죽이려고 했지만, 몽골 관인의 구원으로 그는 살아남았다.
1232년, 대집성은 과부인 딸을 최우에게 시집보내 최우의 장인이 되었다. 그는 어사대부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그는 강화천도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는 개경을 버리지 않고 지키자고 주장하였다. 그는 강화천도에 반대한 김세충을 처단하라고 건의하였다. 그는 최우의 외척으로서 강화천도에 공을 세웠다고 하여 수사공이 되었다. 1236년, 그는 강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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