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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계보, 1392년 ~ 1910년 518년 역사, 1대 ~ 27대

by 알아봐요 2023. 9. 5.

조선시대는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간 이어진 왕조로, 태조 이성계부터 순종까지 총 27명의 왕이 승계했습니다. 각 왕의 특징과 업적을 통해 조선 왕조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 왕조 계보, 1392년 ~ 1910년 518년 역사, 1대 ~ 27대

 

1대 태조 이성계

고려의 말기 무신으로 활약하던 이성계(李成桂)는 고려 말 홍건적 및 왜구 등의 침략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큰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1388년 위화도회군을 계기로 개경에 돌아와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한 뒤 창왕을 옹립해 정치 및 군사적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신진사대부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힘입어 신흥 정치세력의 대표로서 기반을 닦아 공양왕을 내쫓고 1392년 조선 왕조를 세워 태조로 즉위했습니다. 1335년에 출생, 1408년에 사망했습니다. 재위 기간은 1392년 7월부터 1398년 9월인 6년 2개월입니다.

2대 정종

정종은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의 차남, 두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나기로 이름을 떨치던 왕자였습니다. 제1차 왕자의 난을 통해 세자로 책립되었습니다. 재위 기간은 1398년부터 1400년까지였습니다.

 

 

3대 태종 이방원

태조의 다섯째 아들인 태종 이방원(李芳遠)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 결정적인 고비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나선 인물로, 건국 후 신진개혁세력과 갈등을 겪었지만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여 국권을 장악하고 정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습니다. 왕위에 올라 공신들을 축출하고, 사병을 혁파하였으며 호패법과 6조 직계제를 실시하였습니다. 자신의 처가와 사돈 등을 비롯한 왕실의 외척을 숙청하여 왕권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재위 기간은 1400년부터 1418년인 18년입니다.

4대 세종

태종의 셋째 아들인 세종 이도(李祹)는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의 아들이었습니다. 1397년 5월 15일(음력 4월 10일) 태어나 1450년 3월 30일(음력 2월 17일) 사망했으며 1418년 9월 9일부터 1450년 3월 30일인 총 32년 간 재위했습니다. 과학 기술, 예술, 문화,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백성들에게 농사에 관한 책을 펴내었지만 글을 몰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문자 체계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였습니다. 과학 기술에도 두루 관심을 기울여 혼천의, 앙부일구, 자격루, 측우기 등의 발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신분을 뛰어넘어 장영실, 최해산 등의 학자들을 후원하였습니다. 국방에 있어서는 이종무를 파견하여 왜구를 토벌하고 대마도를 정벌하였으며 이징옥, 최윤덕, 김종서 등을 북방으로 보내 평안도와 함길도에 출몰하는 여진족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4군 6진을 개척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으로 국경을 확장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과학, 음악 등 모든 분야를 발전시켜 조선의 황금시대를 이끈 분입니다.

5대 문종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첫째 아들로, 초명은 이향이었습니다. 유교적 이상 정치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재위 기간은 1450년부터 1452년까지였습니다. 그의 묘호인 문종(文宗)은 문치(文治)를 발전시키고 다스렸다는 뜻입니다

6대 단종

단종은 조선의 제5대 국왕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아들이었습니다. 단종은 12살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나 숙부 세조의 정변으로 양위하였고, 세조 측근들의 탄핵으로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사사 혹은 교살되어 비운의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7대 세조

조선의 제7대 국왕이며,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은 1455년부터 1468년까지였습니다.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조카인 단종을 핍박하여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의정부의 서사제를 폐지하고 육조 직계제를 시행했습니다.

8대 예종

조선의 제8대 국왕 예종(睿宗)은 이황(李晄)으로, 세조와 정희왕후의 둘째 아들입니다. 출생은 1450년 1월 23일(음력 1월 1일)이며 사망은 1470년 1월 9일(음력 11월 28일)입니다. 세자 시절인 1466년부터 승명대리로 정치에 참여하면서 세조의 통치방법을 몸에 익혔습니다. 세조 사후 19세에 즉위했고 즉위년에 현직관료에게 지급하던 직전에 대한 수조법을 제정했고, 이듬해에는 각 도와 읍에 있는 둔전을 일반 농민이 경작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재위 1년 2개월 만에 요절했습니다.

9대 성종

성종은 세조의 손자이고, 덕종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영의정 한확의 딸 소혜왕후이고, 비는 영의정 한명회의 딸 공혜왕후였습니다. 성종은 경연을 되살리고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반포하여 조선 유교정치의 틀을 닦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능호는 선릉으로 광주에 있었으나 현재는 서울 강남구에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문물제도를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0대 연산군

조선의 제10대 국왕 연산군(燕山君) 이융(李㦕)은 성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폐비 윤씨입니다. 세자로 책봉된 후, 성종이 승하하고 왕세자의 자격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즉위 초기에는 빈민을 돕고 국조보감 등 여러 서적을 완성시켰으며 국방도 튼튼히 하였습니다. 그러나 재위 기간 중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지나친 연회, 사냥, 음행 등 폭정을 자행하다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습니다.

11대 중종

중종은 성종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정현왕후 윤씨였습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쫓아낸 뒤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혁신정치를 시도하였으나 훈구파의 원한으로 실패했습니다.

12대 인종

인종은 중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장경왕후 윤씨입니다. 인종은 기묘사화 때 숙청된 조광조를 신원하고 현량과를 부활하는 등의 도학정치를 추구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당대의 대신들에게 인본의 바탕을 둔 유교의 이상적 군왕으로 일컬어졌으나 재위 7개월만에 사망했습니다. 성품이 온화하고 효심이 깊은 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3대 명종

1534년 7월 3일 (음력 5월 22일)에 중종 (11대 왕)과 문정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초명은 이환입니다. 12세에 즉위하여 을사사화, 정미사화, 을유사화, 을묘왜변 등을 겪었습니다. 재위 기간은 1545년부터 1567년까지였습니다.

14대 선조

조선의 제14대 국왕 선조(宣祖)는 이연(李昖)으로, 명종이 후사 없이 죽은 후 즉위했습니다. 즉위 초부터 사화를 입은 사림들을 신원하고 이황과 이이 등을 중용하여 침체된 정국에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사림들은 파벌로 갈라져 당쟁이 극심해졌고 국력은 약화되어 이 와중에 정여립의 모반사건도 일어났습니다. 1592년에 일본의 침입으로 발발한 임진왜란이 7년간 이어지며 국토가 황폐화되고 전국이 전쟁터가 되어 개국 200년만에 내외적으로 가장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15대 광해군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 아들이었으며 어머니는 선조의 첫 후궁인 공빈 김씨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분조하여 의병을 이끌었습니다. 당쟁으로 임해군, 영창대군을 역모로 죽이고(계축사화)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패륜을 저질렀습니다. 또한 명나라와 후금에 대한 양면 정책으로 난국에 대처했으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습니다.

16대 인조

성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폐비 윤씨입니다. 광해군과 북인(北人) 정권의 극단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1623년 서인(西人)의 김류(金瑬), 이귀(李貴), 이괄(李适) 등과 '반정(反正)'을 일으킨 뒤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습니다. 재위 기간 중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17대 효종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병자호란 후 형 소현세자와 청에 볼모로 가 있다가 먼저 귀국한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자 돌아와 즉위했습니다. 북벌을 국시로 내세웠으나 북벌의 기회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18대 현종

현종은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아들입니다. 조선의 역대 국왕 중 유일하게 외국(청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최초로 왕비 외에 후궁을 한명도 두지 않은 왕이기도 합니다. 상복 문제를 두고 남인과 서인의 당쟁(예송논쟁)이 계속되었는데 국왕의 정통성과도 관련된 문제인 만큼 정쟁이 심화되었습니다. 재위기간중 양란을 겪으면서 흔들렸던 조선의 지배질서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9대 숙종

숙종은 18대 현종의 외아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했습니다. 숙종 재위기는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러 당폐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 시기였습니다. 당쟁과 궁중암투가 극에 달했습니다. 재위 기간은 1674년 9월 12일 (음력 8월 23일)부터 1720년 7월 1일 (음력 6월 8일)까지였습니다.

20대 경종

숙종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숙빈 신씨였습니다. 집권시 신임사화 등 당쟁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21대 영조

조선의 제21대 국왕 영조(英祖)는 이금(李昑)으로, 숙종의 넷째 아들입니다. 영조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 왕이며, 손자 정조와 함께 조선의 중흥기를 이끌었습니다. 완론탕평을 주창하며 노론과 소론의 당론을 중재하고 탕평책을 써서 당쟁을 제거에 힘썼으며 균역법 시행, 신무고 부활, 동국문헌비고 발간 등 부흥의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탕평론은 실패하였고, 둘째 아들 사도세자와 갈등을 빗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22대 정조

조선의 제22대 국왕 정조(正祖) 이산(李祘)은 국정개혁을 추진하면서 국가재정을 개선하고, 군사제도를 개편하였습니다. 또한 학문과 예술을 장려하고, 법률을 개정하여 국민의 생활을 개선하였습니다. 탕평책에 의거하여 인재를 등용 서적보관 및 간행을 위한 규장각 설치,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 활자를 만들고 실학을 발전시킴으로써 문화적 황금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조선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23대 순조

22대 정조의 둘째 아들이었으며, 어머니는 정빈 김씨였습니다. 11세에 즉위했습니다. 김조순 등 안동 김씨가 세도정치를 하던 시대로 백성들의 생활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1811년 홍경래의 난이 발생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은 1800년부터 1834년까지였습니다.

24대 헌종

제24대 국왕 헌종(憲宗)은 이헌(李昰)으로, 순조의 셋째 아들입니다. 조선의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인 8세에 즉위한 왕으로, 이로 인해 그의 할머니인 순원왕후 김씨가 6년간 국정을 이끌었습니다. 대왕대비의 친정인 안동 김씨와 헌종의 외가인 풍양 조씨의 권력 투쟁에 휘말렸습니다. 헌종의 죽음으로 정조의 직계 자손은 단절되었습니다.

25대 철종

철종은 순조의 둘째 아들이었으며, 어머니는 순빈 민씨였습니다.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로 맞아 들여 안동 김씨세도정치가 시작됐습니다. 진주민란 등 민란이 빈번했습니다. 재위 기간은 1849년부터 1863년까지였습니다.

26대 고종

조선의 제26대 국왕 고종(高宗)은 이명복(李命福)으로, 철종의 셋째 아들입니다. 조선의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즉위한 왕으로, 그의 재위 기간 동안 국내외에서 많은 변화와 혼란이 있었습니다. 고종은 국내적으로는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외국의 간섭 및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대원군과 민비의 세력다툼 등 내부의 파벌 당쟁으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구미열강의 문호개방 압력에 시달렸고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퇴위했습니다.

27대 순종

순종은 26대 고종의 둘째 아들이었으며, 어머니는 순정왕후 민씨였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국왕이었습니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35년간 치욕의 일제시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왕위는 1910년에 폐지되었습니다.


조선 왕조의 518년 역사는 다양한 왕들의 통치 아래에서 많은 변화와 발전을 겪었습니다. 각 왕들은 그들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국가를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들 왕들의 통치 방식과 업적을 통해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그들의 업적과 실패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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