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노는 고려시대에 노(弩)와 관련된 병종이자, 강한 탄력을 가진 쇠뇌를 사용하여 멀리 화살을 날려보낼 수 있는 기계식 활을 의미했던 것으로 유추되고 있습니다. 강노는 동여진과 거란의 침입에 대항하여 고려의 국방에 큰 공을 세웠으며, 중군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강노는 강노도령과 강노지유의 직책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강노도령은 강노군 전체를 거느리는 총지휘관이었고, 강노지유는 도령을 보좌하여 부대를 통솔하는 부지휘관에 해당되었습니다.
강노의 특징과 장점
강노는 정노(精弩)와는 달리 강한 탄력을 이용하여 화살을 멀리 보내려면 노의 크기도 정노에 비해 컸을 것으로 유추되고 있습니다. 정노가 소규모 쇠뇌로서 병사의 손으로 쉽게 장전할 수 있었다면 강노는 손과 발을 모두 이용하거나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장전할 정도로 탄성이 큰 쇠뇌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강노는 적군의 지휘소나 군영, 공성무기 등을 깨뜨리는 데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강노는 또한, 화약이 발명되기 전에는 가장 강력한 원거리 무기였으며,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데도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강노의 역사와 공적
강노는 고려시대에 여러 차례에 걸쳐 적군을 격퇴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1012년, 동여진이 영일, 청하 등지에 쳐들어오자, 강민첨이 안찰사로서 강노군을 이끌고 적을 격퇴하였습니다. 1018년,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내침하자, 강민첨은 대장군으로 평장사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강노군을 편성하고 흥화진에서 적을 대파하였습니다. 패배한 소배압의 군사가 바로 개경으로 쳐들어오자, 강민첨은 다시 강노군을 이끌고 이를 추격하여 자주(慈州)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에 현종이 강민첨을 응양상장군주국(凝陽上將軍主國)으로 삼고,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에 녹훈하였습니다.
강노의 의의와 유산
강노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무기로, 고려의 역사에 빛나는 영웅들의 손에 들려 적군을 무찌르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강노는 또한, 고려의 군사문화와 기술의 발달을 보여주는 유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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