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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교수도감, 고려 후기 유학의 진흥을 위한 임시관서

by 알아봐요 2023. 12. 9.

경사교수도감, 고려 후기 유학의 진흥을 위한 임시관서

 

 

경사교수도감은 고려 후기에 유학의 진흥업무를 관장하던 임시관서로,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경사교수도감은 1296년에 독립적인 특수관청으로 설치되었으며, 명유(明儒) 2인을 택하여 경사교수도감사(經史敎授都監使)로 삼아 7품 이하의 관원에게 경사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경사교수도감은 주자학의 전래에 따른 경전연구가 활발히 추진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며, 고려 후기 유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경사교수도감의 설치 배경

경사교수도감의 설치 배경은 고려시대의 학풍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문관등용의 정도로서 제술과와 명경과가 있었으나, 당시 문벌귀족들이 경학보다는 한문학을 숭상함에 따라 제술과를 더욱 중요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자연 유학자들도 과거 위주의 시·문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학풍이 고려 후기에도 계속되자, 1280년(충렬왕 6) 왕은 경·사에 능한 선유 7인을 골라 경사교수에 임명, 국자감에 소속시켜 학생들에게 경·사만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유학진흥에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1296년에는 독립적인 특수관청으로 경사교수도감을 설치하여 보다 적극적인 유학진흥을 꾀하였습니다.

 

경사교수도감의 직제와 운영

경사교수도감의 직제와 운영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사교수도감은 명유 2인을 택하여 경사교수도감사로 삼아 7품 이하의 관원에게 경서와 사서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경사교수도감사는 경사교수도감의 총지휘관이었으며, 경사교수도감의 부지휘관은 경사교수도감지유(經史敎授都監指諭)이었습니다.

 

경사교수도감은 중·전·후·좌·우군의 5군(五軍) 편제에서 중군(中軍)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경사교수도감은 경사교수도감사와 경사교수도감지유를 비롯하여 경사교수도감부사(經史敎授都監副使)·경사교수도감참사(經史敎授都監參事)·경사교수도감관사(經史敎授都監官事) 등의 직책이 있었습니다.

 

경사교수도감의 역사와 공적

경사교수도감은 주자학의 전래에 따른 경전연구가 활발히 추진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인 안향(安珦)은 유학진흥을 위한 장학기금인 양현고(養賢庫)의 섬학전(贍學錢)을 마련할 때, 경사교수도감 2인을 추천함으로써 일반관료뿐 아니라, 7재(七齋) 및 사학 12도(徒)의 학생들까지도 경서연구에 전념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주자학 도입에 따른 경전연구가 경사교수도감을 중심으로 활발히 추진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또한, 경사교수도감은 고려 후기 유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고려 후기 유학은 조선시대 과거제도에서 사서오경을 시험보는 생원과와 시(詩)·부(賦)·송(頌)·책(策)의 문예를 시험보는 진사과에서 모두 100인을 선발한 것을 볼 때, 고려 후기 경사교수도감을 중심으로 추진된 유학진흥정책은 조선시대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하겠습니다.

 

경사교수도감의 유산과 후예

경사교수도감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유학기관으로, 고려의 학문과 문화의 발달을 보여주는 유산입니다. 경사교수도감은 또한, 고려의 교육과 행정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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