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첨은 고려 전기에 활약한 무신이자 공신으로, 안찰사, 내사사인, 지중추사 병부상서 등의 직책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는 동여진과 거란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강감찬의 부하로서 흥화진 전투와 자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의 생애와 활동사항을 살펴보겠습니다.
강민첨의 본관과 출신
강민첨의 본관은 진주이며,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그는 지기가 있고 강하고 과감하여 주로 전공을 통하여 입신하였습니다. 그는 고려의 국방을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전장에 나가서 적을 무찌르는 공을 세웠습니다.
동여진과의 전투
강민첨은 동여진의 침입에 대항하여 공을 세웠습니다. 1012년, 동여진이 영일, 청하 등지에 쳐들어오자, 강민첨은 안찰사로서 문연, 이인택, 조자기 등과 함께 주군병을 독려하여 격퇴하였습니다. 이에 현종이 강민첨을 칭찬하고, 그의 공으로 그의 아들 강순(姜淳)에게도 녹자를 가하였습니다.
거란과의 전투
강민첨은 거란의 침입에도 맞서 싸웠습니다. 1018년, 거란의 소배압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내침하자, 강민첨은 대장군으로 평장사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에서 적을 대파하였습니다. 패배한 소배압의 군사가 바로 개경으로 쳐들어오자, 강민첨은 다시 이를 추격하여 자주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에 현종이 강민첨을 응양상장군주국으로 삼고, 추성치리익대공신에 녹훈하였습니다.
강민첨의 직책과 후예
강민첨은 여러 직책을 역임하면서 고려의 권익을 대변하였습니다. 1019년에는 지중추사 병부상서가 되었으며, 1020년에는 태자태부에 추증되었습니다. 문종 때에는 공신각에 올랐습니다. 강민첨은 죽은 뒤에 3일 동안 조회를 하지 않았으며, 그의 공으로 그의 아들 강단에게도 녹자를 가하였습니다. 강민첨의 후예들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무신으로서 활약하였습니다.
강민첨 탄생지
강민첨의 탄생지는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으며,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강민첨의 탄생지에는 그의 영정을 모신 은렬사와 그의 유허를 기념한 개경재 유허비가 있습니다. 강민첨의 탄생지를 방문하면, 고려 전기의 명장 강민첨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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