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는 조선 세종 때부터 편찬을 시작하여 성종 때에 완성된 고려의 국사이다. 고려사는 세가, 지, 표, 열전, 논찬의 다섯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분에는 그에 맞는 서술 원칙이 있습니다. 오늘은 고려사의 각 부분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그 서술 원칙과 특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려사란?
고려사는 조선 전기에 왕명으로 편찬된 고려시대의 역사서입니다. 고려의 태조부터 공양왕까지 32명의 왕의 행적과, 고려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물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총 139권 75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려사는 어떻게 편찬되었을까요?
고려사의 편찬은 조선이 건국된 이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고려시대의 역사를 정리하고, 조선의 건국을 합리화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1392년에 정도전, 정총 등에게 고려시대의 역사를 편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들은 1395년에 편년체로 서술된 『고려국사』를 완성하였습니다. 편년체란 연도별로 사건을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고려국사』는 편찬 기간이 짧고, 개국공신들의 주관이 개입되어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한 조선 건국 과정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는 문제점도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태종은 1414년에 하륜, 남재, 이숙번, 변계량 등에게 『고려국사』를 개수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개수란 기존의 역사서를 보완하고 수정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1416년에 하륜이 사망하면서 개수 작업은 중단되었습니다. 그 후 세종은 『고려국사』의 공민왕 이후의 기사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1419년에 유관, 변계량 등에게 다시 개수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들은 1421년에 『고려국사』를 개수하였습니다. 이 때에는 공민왕 이후의 기사를 보충하고, 고려의 왕실 용어를 중국의 용어와 일치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수교고려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반포하지 못하고, 1423년에 유관과 윤회에게 다시 개수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들은 1424년에 『고려국사』를 개수하였습니다. 이 때에는 당시 썼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를 『수교고려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반포하지 못하고, 변계량의 반대로 인해 중지되었습니다.
1446년에 세종은 『고려국사』의 고려 말기 기사에서 태조 이성계의 선대 도조, 환조로부터 태조에 이르는 기록이 빠져 있음을 발견하고, 1449년에 김종서, 정인지, 이선제 등에게 개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개찬이란 새로운 역사서를 편찬하는 작업입니다. 이 때에는 사체의 문제가 새로이 제기되었습니다. 사체란 역사서를 작성하는 방식입니다. 이에 세자와 함께 왕에게 건의하여 편년체에서 기전체로 편찬하기로 허락을 받았습니다. 기전체란 왕과 인물, 분야별로 사건을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1451년에 김종서 등에 의해 『고려사』가 편찬되었습니다. 이로써 고려시대의 역사를 정리하는 노력은 57년 만에 마무리되었습니다.
고려사의 편찬에는 어떤 인물들이 관여하였을까요?
고려사의 편찬에는 조선의 왕과 문신들이 주로 관여하였습니다. 왕은 역사서의 편찬을 명령하고, 편찬 방향과 사체를 결정하였습니다. 문신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역사서를 편찬하거나 개수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도전
『고려국사』의 편찬을 총괄하고, 편년체로 서술하였습니다. 고려의 역사를 조선의 건국에 맞게 해석하고, 개국공신들의 업적을 강조하였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의 초대 문신이자,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외교 등의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정도전은 『동문선』, 『정도전집』, 『진고려국사전』 등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변계량
『고려국사』의 개수에 참여하였습니다. 고려의 왕실 용어를 중국의 용어와 일치시키려는 시도에 반대하였습니다. 고려의 독립성과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변계량은 조선의 초대 문신이자, 조선의 법제, 행정, 교육 등의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변계량은 『변계량집』, 『변계량전』, 『변계량전서』 등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유관
『고려국사』의 개수에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썼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고려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려고 하였습니다. 유관은 조선의 초대 문신이자, 조선의 천문, 지리, 의학 등의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유관은 『유관집』, 『유관전』, 『유관전서』 등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김종서
『고려사』의 편찬을 총괄하고, 기전체로 서술하였습니다. 고려의 역사를 완전하고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하였습니다. 김종서는 조선의 초대 문신이자, 조선의 역사, 문학, 예술 등의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김종서는 『김종서집』, 『김종서전』, 『김종서전서』 등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정인지
『고려사』의 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고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출처를 명시하였습니다. 정인지는 조선의 초대 문신이자, 조선의 역사, 문학, 예술 등의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정인지는 『정인지집』, 『정인지전』, 『정인지전서』 등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이선제
『고려사』의 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고려의 역사를 상세하고 깊이 있게 서술하였습니다. 이선제는 조선의 초대 문신이자, 조선의 역사, 문학, 예술 등의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선제는 『이선제집』, 『이선제전』, 『이선제전서』 등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고려사 (高麗史) 범례 5조
고려사는 조선 세종 25년(1443년)부터 28년(1446년)까지 4년간 편찬된 고려 역사의 정사(正史)입니다. 고려사는 세가(世家) 34권, 지(志) 37권, 표(表) 3권, 열전(列傳) 50권으로 총 124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려사의 편찬 원칙은 범례(凡例)라는 서문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세가, 지, 표, 열전, 논찬에 대한 범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세가
세가란 고려 왕실의 역사를 기록한 부분으로, 고려의 34대 왕에 대한 업적과 사건을 연대순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세가의 편찬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왕기(王紀)는 제후의 격에 맞는 세가로 하여 명분을 바로잡습니다. 즉, 고려가 고구려의 후손이고,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강조합니다.
- 세가를 쓰는 법은 『한서(漢書)』와 『원사(元史)』의 서술 원칙에 따라 사실과 언사(言辭)를 모두 기술합니다. 즉, 역사적 사실과 왕의 행위나 말에 대한 평가를 함께 씁니다.
- 종(宗)이나 폐하(陛下) · 태후(太后) · 태자(太子) · 절목(節目) · 제조(制詔)를 칭한 경우는 비록 참유(僭踰)한 것이지만, 당시에 칭했던 대로 기록해서 사실을 보존합니다. 즉, 고려가 중국의 종속국이 아니었음을 입증합니다.
- 원구(圓丘)에서의 제천, 적전(籍田) · 연등회(燃燈會) · 팔관회(八關會) 등 매년 치러지는 행사는 첫 기사만 쓰되, 왕이 직접 참여한 경우는 반드시 기록합니다. 즉, 고려의 국가 의식과 문화적 전통을 나타냅니다.
- 고려 왕실의 세계(世系)는 황주량(黃周亮)이 찬한 실록에 의거해 삼대(三代)를 추증한 것을 사실로 취해 씁니다. 즉, 고려가 고구려의 후손이고, 고구려가 삼한의 후손임을 인정합니다. 다른 기록에 전하는 것은 별도로 첨부합니다.
지
지란 고려의 제도와 풍속을 기록한 부분으로, 천문지(天文志) · 역지(曆志) · 오행지(五行志) · 예지(禮志) · 악지(樂志) · 여복지(輿服志) · 선거지(選擧志) · 백관지(百官志) · 병지(兵志) · 형법지(刑法志) 등 10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지의 편찬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실을 분류해 싣는 『원사』에 의거합니다. 즉, 중국의 역대 사서에서 사용한 지의 분류 방식을 따릅니다.
- 『고금상정예문』 · 『식목편수록(式目編修錄)』 및 여러 사람의 잡록을 취합니다. 즉, 고려의 제도와 풍속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합니다.
- 지에는 각기 그 서문이 있고, 지는 다시 세부 내용별로 항목을 구분해 저술합니다. 항목별로는 먼저 연월이 없는 일반적인 기사를 싣고 뒤에 연월이 기록된 구체적인 역사 사실을 기술합니다. 즉, 고려의 제도와 풍속의 변천과 발전을 보여줍니다.
표
표란 고려의 연대와 중국의 연대를 대조한 부분으로, 고려의 34대 왕의 재위 연도와 중국의 연호(年號)를 나타내었습니다. 표의 편찬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삼국사기』에 따라 오직 연표만을 작성합니다. 즉, 중국의 역대 사서에서 사용한 표의 분류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 우리나라 연표의 난에는 왕의 즉위 사실, 외국 연호의 사용, 왕을 책봉하기 위해 온 책봉사의 기사, 반역자의 기록, 집정무신의 교체 사실 등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고려의 역사적 사실과 중국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에 의한 기술을 합니다. 즉, 왕이 즉위한 해를 원년으로 칭하지 않고, 그 다음해를 원년으로 기술합니다. 이는 유교명분에 맞는 방식입니다.
열전
열전이란 고려의 인물들의 역사를 기록한 부분으로, 후비전(后妃傳) · 종실전(宗室傳) · 제신전(諸臣傳) · 양리전(良吏傳) · 충의전(忠義傳) · 효우전(孝友傳) · 열녀전(烈女傳) · 방기전(方技傳) · 환자전(宦者傳) · 혹리전(酷吏傳) · 폐행전(嬖幸傳) · 간신전(奸臣傳) · 반역전(叛逆傳) 등 13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열전의 편찬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열전의 구성 순서와 특별한 업적이 없는 경우에는 부자(父子)를 같은 전(傳)에 합쳐 싣습니다. 즉, 특별한 업적이 없는 인물들은 한권의 열전에 함께 기록합니다.
- 우왕(禑王) · 창왕(昌王)은 역적인 신돈(辛旽)의 자손이므로 이들 16년간의 역사는 『한서』 왕망전(王莽傳)의 예에 따라 열전에 써서 역적을 토죄하는 뜻을 밝힙니다. 즉, 고려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조선의 건국을 합리화합니다.
- 열전은 후비전(后妃傳) 2권, 종실전(宗室傳) 2권, 제신전(諸臣傳) 29권, 양리전(良吏傳) 1권, 충의전(忠義傳) · 효우전(孝友傳) · 열녀전(烈女傳) · 방기전(方技傳) · 환자전(宦者傳) · 혹리전(酷吏傳) · 폐행전(嬖幸傳) · 간신전(奸臣傳) · 반역전(叛逆傳) 1권의 총 50권으로서 『고려사』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다.
- 770인이 입전(立傳)되었고, 다시 238인이 곁들여져 모두 1,008인의 기록이 수록되어 있는 거대한 전기집이다. 실제 열전의 분류 방식은 『원사』와 가장 가까우며, 또한 『송사』도 참조하였다.
- 열전에도 『고려사』 찬자들이 직접 쓴 서문이 있어 이를 통해 그들의 역사관과 『고려사』에 대한 인식 태도를 알 수 있다.
논찬
논찬이란 고려 왕들에 대한 찬양과 비판을 기록한 부분으로, 세가에만 싣고 있습니다. 논찬의 편찬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중국의 역대 사서에는 기 · 전 · 표 · 지의 말미에 찬자들이 사론(史論)을 썼지만, 여기에서는 『원사』에서 논찬을 쓰지 않는 방식을 취합니다. 즉, 역사적 사실과 평가를 분리합니다.
- 남아 있는 이제현 등의 찬(贊)을 세가에만 인용합니다. 즉, 고려의 역사에 대한 고려인들의 평가를 보여줍니다.
- 조칙(詔勅)과 상소문은 그 내용을 분류해 각 지에 싣고 나머지는 세가와 열전에 실습니다. 즉, 고려의 제도와 풍속에 관한 자료를 지에 모아둡니다.
- 유가(儒家)의 문집과 잡록의 사적 중 내용이 있는 것은 뽑아 보탰으며, 제(制) · 조(詔)나 표 · 책의 글 중 내용이 없는 허사는 삭제합니다. 즉, 역사적 사실을 선별하고, 불필요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고려사는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고, 조선의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편찬된 역사서로, 우리나라 역사의 보물입니다. 고려사를 통해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우리나라 역사의 연속성과 독립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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