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4대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입니다. 공양왕은 이성계 등에 의해 추대되었으나 조선 건국 직전에 폐위되어 강원도로 추방되었다가 1394년 삼척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공양왕릉은 쌍릉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복원 정비를 하면서 왕릉의 상설 제도와 어긋나게 석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발굴을 통해 능역과 석실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여 복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공양왕릉의 서지적 사항과 편찬 경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공양왕릉의 건립경위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국왕으로, 1389년 이성계, 심덕부 등에 의해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으나 1391년 폐위되었습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강원도로 추방되어 원주와 간성 등지를 떠돌다 1394년 삼척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살해될 당시 공양군으로 강등된 상태였으나, 1416년(태종 16) 공양왕으로 추봉되었습니다. 무덤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남아 있습니다.
공양왕은 왕위에 있던 동안에도 왕권이 약화되어 이성계의 영향력에 의존하였습니다. 이성계는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아들인 우왕을 즉위시키려 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저항으로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계속해서 공양왕을 압박하고, 결국 1392년에 조선을 건국하면서 공양왕을 강원도로 추방하였습니다. 공양왕은 강원도에서도 이성계의 추격을 받아 삼척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렇게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공양왕릉의 변천
고려왕릉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관리가 소홀해져 대부분 실전되었다가 현종 때 다시 찾아 관리하게 되는데, 공양왕릉도 이때 찾아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현종은 공양왕릉이 개성에서 멀리 떨어져 왕씨 후손이 관리하기 어려운 형편을 들어 고양군의 인근 주민이 관리토록 하였으며, 숙종 때에는 왕릉 주변의 분묘를 파내는 조치 등을 통해 관리하였습니다. 고종은 고려공양왕고릉이란 표석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나 공양왕릉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훼손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공양왕릉의 석물을 파괴하거나 도난하였으며, 석실도 파괴하였습니다. 이후 1960년대에 문화재청이 공양왕릉을 복원하였으나, 석물의 배치가 왕릉의 상설 제도와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석실의 구조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공양왕릉은 현재까지도 완전하게 복원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공양왕릉의 형태와 특징
고려공양왕릉은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무덤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입니다. 현재는 구릉의 경사면에 3단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 최상단에는 2개의 봉분과 각 1개씩의 혼유석주와 비석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제2단에는 능역의 중심축 선에 맞추어 장명등이 서 있고, 그 좌우에 크고 작은 2쌍의 석인상이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장명등 앞에는 석수가 남쪽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앞에 난간 동자주가 놓여 있습니다.
- 제3단은 2단보다 3m 정도 낮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능역의 중심축 선에 맞추어 정자각주이 세워졌을 것이나 지금은 없어진 상태입니다. 이와 같은 석물의 배치는 고려왕릉의 상설 제도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봉분 주위에 배치되는 석호주와 봉분 가장자리를 따라 두르는 난간의 동자주가 장명등 앞쪽에 배치되어 있음은 후대 보수 때 재배치한 것입니다. 매장 주체부는 고려에서 조선 전기까지 이어진 앞트기식 석실로 판단됩니다.
공양왕은 왜 무덤이 두 개일까?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와 강원도 삼척시 두 곳에 남아 있습니다. 고양의 공양왕릉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으로 남아 있으나, 삼척의 공양왕릉(강원도 기념물)은 민간에 구전되어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의 무덤이 두 곳에 존재하는 것은 공양왕의 죽음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그만큼 고려의 마지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양왕릉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 두 곳 모두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능역 및 석실의 구조를 이해하고 왕릉의 역사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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