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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장이란? 고려시대 촌장의 역할과 위치

by 알아봐요 2023. 12. 22.

고려시대에는 촌장이라는 지방행정의 말단기관이 있었습니다. 촌장은 촌락의 수장으로서 각종 주·현의 이속과 함께 지방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촌장은 촌정, 촌전, 향사이장 등으로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촌장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촌장의 전신은 신라하대부터 존재하던 촌주층으로 구성된 대감과 제감이었습니다. 대감과 제감은 원래 중앙에서는 군직이었지만, 신라 말 고려 초에 중앙정부의 지방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촌락의 수장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지방사회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고, 관반체제라는 지배기구를 형성하고, 군사적인 자립성을 유지하면서 지방사회를 실질적으로 통치하였습니다.

 

하지만 987년에 성종이 촌장과 촌정으로 개칭하면서 이들의 군사적 성격은 사라지고, 지방행정의 말단기관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촌장은 지방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요?

 

촌장의 역할과 지위

촌장은 지방행정의 말단기관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촌장의 주된 임무는 1년 농사의 작황에 대하여 수령에게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촌류이삼품군이라고 추측되는 향병의 책임도 맡았습니다. 향병은 지방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고, 외적과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촌장은 또한 향리와 함께 각종의 조세를 수납하는 책임도 지었습니다. 조세는 농산물이나 직물, 돈 등으로 납부되었습니다. 촌장은 자기 군현의 관과 역에 내왕하는 관인의 뒷바라지도 담당하였습니다. 뒷바라지란 관인의 숙식과 이동에 필요한 비용이나 물품을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촌장은 단순히 행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촌장은 기인과 함께 사심관의 추천과정에 관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심관은 지방의 인재를 중앙에 추천하는 관직이었습니다. 촌장은 또한 향리와 더불어 토지문서를 작성하는 데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토지문서는 토지의 소유권이나 경계, 면적 등을 기록한 문서였습니다.

 

이와 같이 촌장은 지방통치에 있어서 이속들과 대등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촌장의 신분적 지위는 이속들과 대등하지 않았습니다. 향리는 중앙으로부터 향직이 제수되어 전시과의 토지를 지급받았지만, 촌장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촌장은 촌주층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지방사회에서 존경받는 존재였습니다.

 

촌장이란? 고려시대 촌장의 역할과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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