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동궁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동궁은 왕의 아들인 태자가 살고 공부하고 정치를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동궁은 왕궁과는 별도로 있었기 때문에, 동궁의 일을 관리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동궁관이라는 직원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직위가 첨사였습니다.
첨사는 동궁의 서무를 관장하는 관직이었습니다. 서무란 문서나 기록, 예절, 의례 등을 다루는 일을 말합니다. 첨사는 동궁의 모든 서무를 책임지고, 태자와 왕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고, 태자의 교육과 훈련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첨사의 역사
첨사는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관직입니다. 1068년에 문종이 왕이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인 태자 성종을 동궁에 보내고, 그를 돕기 위해 첨사를 설치했습니다. 이때 첨사의 품계는 정3품이었고, 정원은 1인이었습니다. 품계란 관직의 등급을 말하고, 정원은 관직의 인원수를 말합니다. 정3품은 고려시대의 관직 중에서 3번째로 높은 등급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고려시대에는 여러 번 태자가 바뀌었고, 그 때마다 첨사를 다시 설치했습니다. 1098년에 숙종이 왕이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인 태자 인종을 동궁에 보내고, 첨사를 설치했습니다. 1116년에 예종이 왕이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인 태자 혜종을 동궁에 보내고, 첨사를 설치했습니다. 이때도 첨사의 품계와 정원은 정3품과 1인이었습니다.
1131년에 인종이 왕이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인 태자 명종을 동궁에 보내고, 첨사부라는 부서를 만들었습니다. 첨사부는 동궁의 서무를 전담하는 부서였고, 그 안에 첨사가 2명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첨사는 좌첨사와 우첨사로 나뉘었고, 각각 동궁의 서무를 분담했습니다. 좌첨사와 우첨사의 품계와 정원은 정3품과 1인이었습니다.
그러나 1276년에 충렬왕이 왕이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인 태자 원종을 동궁에 보내고, 세자첨사부라는 부서를 만들었습니다. 세자첨사부는 동궁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부서였고, 그 안에는 첨사가 없었습니다. 세자첨사부는 첨사부를 대신했고, 첨사는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다시 첨사라는 관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첨사는 고려시대 동궁의 서무를 관장하는 중요한 관직이었지만, 세자첨사부의 설치로 인해 사라진 관직입니다. 첨사는 고려시대의 역사와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태자의 성장과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첨사는 고려시대의 동궁관 중에서 가장 높은 직위였고, 태자의 신임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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