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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의 감무, 만들어진 이유와 임무는?

by 알아봐요 2024. 1. 2.

감무 뜻

감무란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 속군현(부속된 군현)에 파견된 지방 관직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감무는 유민(떠돌아다니는 백성)의 안집과 권농(농사를 권장), 조세 수취, 향리(향민의 대표)를 감독하는 등 부임한 군현의 지방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감무는 1106년(예종 1)부터 시작하여 인종 대, 명종 대에 걸쳐 대규모로 파견되었고, 1359년(공민왕 8)에 안집별감(安集別監)이라 고쳤다가 1388년(창왕 즉위년)에 다시 현령 · 감무로 바꾸었습니다. 공양왕 때에는 조선 건국 세력이 군현제를 정비하는 작업의 하나로 감무를 새로 설치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으로 개칭하였습니다.

 

 

감무는 왜 만들어졌나요?

감무를 속군현에 설치한 목적은 유민을 정착시켜 국가에서 필요한 조세와 역(노동)을 효과적으로 확보함과 동시에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함으로써 중앙집권화를 꾀하는 데에도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려시대 지방 군현 중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과 속현이 다수 있었는데, 이들은 향리의 관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향리는 지방민의 대표로서 지방행정에 참여하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지시를 전달하고 조세를 거두는 역할에 그쳤습니다. 따라서 유민의 안집과 권농, 풍속의 교정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예종 때부터 속군과 속현에 감무를 파견하여 유민을 안집하고 권농하게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유민이 점차 돌아오고 산업이 번창하였습니다. 또한 감무는 중앙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세를 수취하고 향리를 감독하였습니다. 이는 중앙정부가 지방의 행정력을 강화하고 지방민의 복지를 증진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감무의 담당 임무

감무는 속군현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유민의 안집과 권농이었습니다. 유민은 전쟁이나 재난, 흉년 등으로 인해 농사를 버리고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감무는 유민을 정착시켜 농사를 일으키게 하고, 농사에 필요한 도구나 씨앗을 지원하였습니다. 또한 유민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농업기술을 가르치고, 농사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유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국가의 농업생산력을 증진시켰습니다.

 

감무는 또한 조세 수취와 향리 감독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감무는 중앙정부의 명령을 받아 속군현의 백성들로부터 조세를 거두었습니다. 조세의 종류는 논세(田稅), 잡세(雜稅), 상세(商稅), 주세(酒稅) 등이 있었습니다. 감무는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감무는 향리의 행위를 감독하고, 향리의 선출과 해임을 관리하였습니다. 향리는 향민의 대표로서 지방행정에 참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감무는 향리가 중앙정부의 지시를 잘 전달하고, 백성의 어려움을 잘 해결하도록 하였습니다.

 

감무는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의 지방행정제도의 한 부분으로, 속군현의 지방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감무는 유민의 안집과 권농을 통해 지방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농업생산력을 증진시켰습니다. 또한 감무는 조세 수취와 향리 감독을 통해 중앙정부의 지방행정력을 강화하고, 지방민의 복지를 증진시켰습니다.

 

고려와 조선의 감무, 만들어진 이유와 임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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