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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공직자, 고영신

by 알아봐요 2024. 1. 18.

고영신은 고려 전기에 활약한 문신으로, 여러 벼슬을 거쳐 참지정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공부에 힘써 글을 잘 지었고, 정의로운 행실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영신의 출생과 학업

고영신은 개주 고씨의 가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고려의 문신이었으나, 고영신이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영신은 고아가 되었지만 부모님의 뜻을 이어받아 공부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는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신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고영신의 벼슬

고영신은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는 우찬선대부, 이부낭중추밀원우승선, 어사중승, 형부시랑우간의대부 등의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는 논의함이 강직하여 굽힘이 없었고, 정의로운 행실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예종이 즉위하자 비서감직문하성이 되었고, 경상도에 홍수가 나자 안무사로 파견되어 백성의 구제에 힘썼습니다. 그는 서북면병마사, 동지추밀원사, 이부상서지추밀원사 등을 거쳐 1113년에는 검교사공참지정사가 되었습니다. 이 때 대신들이 새로운 법을 만들어 예종에게 올렸으나, 고영신은 이미 성헌이 갖추어져 있으니 고치지 말고 제대로 지켜 잃지 않음이 옳다고 하여 반대하였습니다. 이듬해 참지정사로 치사하였습니다.

 

고영신의 가족과 후손

고영신은 아들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고식이었고, 그 역시 문과에 급제하여 문신이 되었습니다. 고식은 고영신의 행적을 기록한 《양경공전》을 저술하였습니다. 고영신의 후손들은 개주 고씨로 계속되었으며, 그 중에는 고려 말기의 문신 고유(高維)와 조선 초기의 문신 고희(高熙) 등이 있습니다.

 

고영신의 평가와 시호

고영신은 고려 전기의 공직자로서 청렴하고 검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집에 남은 재물이 없을 정도로 절약하였고,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정의로운 논의함으로 법을 수호하였고, 성헌을 존중하였습니다. 그의 시호는 양경(良敬)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려 전기의 공직자, 고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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