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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성전투 - 승려의 활이 몽골군을 물리친 전투

by 알아봐요 2024. 1. 3.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많은 전쟁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2차 침입 때 처인성에서 벌어진 전투는 흥미롭고 의미있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승려 한 사람이 활로 몽골의 장수를 죽여 몽골군을 도망가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처인성전투의 배경과 과정, 결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몽골의 제2차 침입과 강화천도

1232년 6월, 고려는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했습니다. 강화도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서 방어하기에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몽골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고려의 국왕이 육지로 나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고려는 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해 몽골의 장수 사르타이가 고려의 북쪽 지방에 침입했습니다. 사르타이는 서경의 반역자 홍복원과 합세하여 고려를 위협했습니다. 사르타이는 개경을 거쳐 한양산성을 점령하고, 수주에 있던 처인부곡의 소성인 처인성에 도달했습니다.

 

김윤후의 활이 사르타이를 사살

처인성에는 몽골의 제2차 침입 때 난을 피하여 온 백현원의 승려 김윤후가 있었습니다. 김윤후는 승장이라는 직위를 가진 승려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김윤후는 몽골군이 처인성을 공격할 때, 활을 쏘아 사르타이를 죽였습니다. 사르타이는 몽골군의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몽골군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몽골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부장 철가의 인솔로 곧 북으로 철수했습니다.

 

몽골군의 남하 저지와 처인부곡의 승격

처인성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승려 한 사람의 영도에 의해 몽골군을 삽시간에 무너뜨려 물러가게 한 것은 큰 승리였습니다. 처인성전투의 승리로 몽골군은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남쪽 지방은 전쟁의 피해를 줄이게 되었습니다. 처인성승첩의 결과, 처인부곡은 처인현으로 승격되었고, 김윤후는 상장군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사양하여 섭랑장이 되었습니다.

 

처인성전투 - 승려의 활이 몽골군을 물리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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