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역사에는 많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영(崔瑩)은 가장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인물로 기억됩니다. 그는 고려 후기에 왜구와 홍건적, 원나라와 명나라에 맞서 싸워 고려의 안위를 지켰습니다. 그는 무신이자 관리로서 여러 번의 전쟁과 난을 평정하고, 공민왕과 우왕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났습니다. 이성계의 반란에 의해 처형당한 것입니다. 오늘은 최영의 삶과 업적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최영의 생애
최영은 1316년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고려의 장수였고 어머니는 지씨였습니다. 최영은 어려서부터 풍채가 괴걸하고 힘이 뛰어났습니다. 그는 양광도도순문사의 부하로 왜구를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우달치가 되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번의 전쟁과 난에서 공을 세워 호군, 대호군, 도통사, 판삼사사 등의 직책을 거쳐 판문하부사까지 올랐습니다. 최영은 공민왕과 우왕의 밀령을 받아 부패한 관리들을 숙청하고, 요동 정벌을 결심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의 딸을 우왕의 비로 들였습니다.
하지만 최영의 삶은 1388년에 바뀌었습니다. 그 해 이성계가 요동 정벌을 거부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했습니다. 이성계는 그의 막강한 군대로 개성을 점령하고, 고려왕조를 부정하려 했습니다. 최영은 이성계의 반란에 반대했지만, 그의 힘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이성계에게 잡혀 고향인 고봉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합포, 충주로 옮겨졌고, 결국 공료죄로 개성에 압송되었습니다. 그리고 순군옥에서 고문을 받았고 1390년 12월에 참수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들은 개성 사람들은 저자의 문을 닫고 슬퍼했고, 온 백성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최영의 업적
최영은 고려의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왜구와 홍건적, 원나라와 명나라에 맞서 싸워 고려의 영토와 주권을 지켰습니다. 그는 또한 공민왕과 우왕의 신뢰를 받아 국정을 수행하고, 부패한 관리들을 숙청했습니다. 그는 요동 정벌을 결심하고 준비했지만, 이성계의 반란에 의해 실패했습니다. 그는 고려왕조를 수호하려는 구파 군벌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1352년 조일신의 난을 평정하고 호군이 되었습니다.
- 1354년 대호군이 되었습니다.
- 1355년 원나라에 원병을 보내고 가오유 등지에서 싸웠습니다.
- 1357년 서북면병마부사로서 압록강 서쪽의 8참을 공격하여 파사부 등 3참을 쳐부수었습니다.
- 1358년 양광전라도왜구체복사가 되어 오예포에 침입한 왜구를 복병을 이용해 격파하였습니다.
- 1359년 홍건적 4만 명이 침입하여 서경을 함락시키자, 생양, 철화, 서경, 함종 등지에서 적을 무찔렀습니다.
- 1361년 홍건적 10만 명이 다시 침입해 개성을 함락시키자, 안우, 이방실 등과 함께 이를 격퇴하여 개성을 수복하였습니다. 그 공으로 도형벽상공신이 되었습니다.
- 1363년 김용이 공민왕을 시해하려 했던 흥왕사의 변을 평정시켰습니다. 그 공으로 진충분의좌명공신이 되었습니다.
- 1364년 원나라에 있던 최유가 덕흥군을 왕으로 받들고 선주에 웅거하였다. 이에 서북면도순위사로서 이성계 등과 함께 수주의 달천에서 싸워 물리쳤습니다.
- 1371년 교동, 강화에 왜구가 출몰하자 동서강도지휘사가 되어 동강에 나가 지켰습니다.
- 1374년 양광, 전라, 경상도 도통사가 되어 제주도를 평정하였습니다.
- 1376년 연산 개태사에 침입한 왜구에게 원수 박인계가 패배하자, 노구를 이끌고 출정하여 홍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렀습니다. 그 공으로 철원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 1378년 왜구가 승천부에 침입하자, 이성계, 양백연 등과 함께 적을 섬멸하고 그 공으로 안사공신이 되었습니다.
- 1380년 해도도통사가 되어 동서강에 나가 왜구를 막다가 병에 걸렸습니다. 이 때 왕은 공을 기록한 철권과 공을 치하하는 교서를 내렸습니다.
- 1388년 문하시중이 되어 왕의 밀령으로 부패한 염흥방, 임견미와 그 일당을 숙청하였습니다. 그 공으로 판문하부사가 되었습니다.
- 1388년 요동 정벌을 결심하고 팔도도통사가 되어 왕과 함께 평양에 가서 군사를 독려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성계가 요동 정벌을 거부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하였습니다.
- 1388년 이성계가 그의 막강한 군대로 개성을 점령하고, 고려왕조를 부정하려 했습니다. 최영은 이성계의 반란에 반대했지만, 그의 힘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성계에게 잡혀 고향인 고봉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 1390년 공료죄로 개성에 압송되어 순군옥에서 고문을 받았고, 12월에 참수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들은 개성 사람들은 저자의 문을 닫고 슬퍼했고, 온 백성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최영은 고려의 영웅이었습니다. 비록 비극적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공적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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