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

고적,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제주의 영웅

by 알아봐요 2024. 2. 16.

오늘은 고려 후기에 활약한 문신이자 제주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고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적은 고려의 의종 때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고조기의 손자로, 본관은 제주입니다. 고적은 1261년 5월 과거에 급제하고, 삼별초가 제주에서 패배한 뒤 유총관에 임명되어 제주지방을 안무하였습니다. 고적은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요?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적의 유총관 임명과 제주 안무

고적은 과거에 급제한 뒤, 삼별초가 제주에서 패배한 사실을 듣고 제주의 안정을 위해 자원하여 유총관에 임명되었습니다. 유총관은 원나라의 침략으로부터 고립된 지방을 관리하는 관직이었습니다. 고적은 제주에 도착한 후, 삼별초의 잔당을 진압하고 제주의 군사력을 강화하였습니다. 또한, 제주의 민생을 위해 농업과 양산업을 장려하고, 세금을 감면하고, 법률을 개선하였습니다.

 

고적의 제주 방어전과 숭고한 희생

고적이 제주에 임명된 지 3년이 지난 1264년, 원나라의 침략이 시작되었습니다. 원나라는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점령하고, 고려의 왕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원나라는 고려의 지방도를 공략하기 시작하였고, 제주도 역시 그 목표가 되었습니다. 원나라는 제주도를 공격하기 위해 1만여 명의 대군을 동원하였습니다. 고적은 제주도의 방어를 책임지고, 3천여 명의 군사와 함께 원나라의 침략에 맞섰는데, 제주도의 지형을 잘 이용하여 원나라의 공격을 끊임없이 저지하였습니다. 이렇게 원나라의 대군을 상대로 3개월 동안 저항하였지만, 결국은 원나라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굴복하였습니다. 고적은 제주도의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원나라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고적의 원나라 유배와 죽음

원나라의 포로가 된 고적은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大都)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원나라의 장관들에게 심한 고문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원나라의 장관들은 고적에게 고려의 왕을 버리고, 원나라에 복종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적은 원나라의 요구를 거절하고, 고려의 왕과 국민을 위해 죽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고적은 고려의 왕과 국민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였고, 고려의 영웅으로 기억되었습니다.

 

고적의 평가와 유산

고적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제주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제주의 안무와 방어를 위해 노력하였고, 제주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적은 원나라의 침략에 맞서고, 고려의 왕과 국민을 위해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고적은 고려의 충신과 용사로 추모되고 있습니다. 고적은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적은 제주도의 민요와 전설에 등장하고, 제주도의 여러 곳에 고적의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고적,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제주의 영웅

댓글